8월 3일.
정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던 하루였습니다.
저희는 복도식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현관문을 여닫을 때마다 강아지처럼 마중을 나오는 모리이기에
집에 들어오기 전에 모리가 신나게 복도바닥을 뒹굴거리는 걸 지켜본 후
한 손에 안고 들어오는 게 퇴근할 때 마다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이었죠.
근데 엄마께서 복도에 내놓은 화분이나 쓰레기봉투를 정리하러
현관문을 열어둔 채로 복도에서 작업하시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모리는 못 나가게 하거나 혹시라도 복도에 따라 나와있으면
도망가지 않게 잘 보고 있으시라고 누누히 말씀드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자정 가까이 되었을 무렵, 거실에 누워 TV를 보며 뒹굴거리는데
엄마께서 어딘가 이상한 표정으로 '모리 좀 찾아줘.' 하시길래
저는 그냥 집 안에서 어디론가 숨어서 안 나오는 모리를 찾아달라시는 줄 알고
'어디 구석에 숨어 있겠지, 왜?' 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더니
'복도에 있었는데 없어졌어 ㅠㅠ' 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러면 안 되는데 순간 저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러버렸어요.
'그러게 내가 문 열어놓지 말라고 그랬잖아?! 도망갈거라고!'
그렇게 화를 내버리고선 아래 위 잠옷차림 상태로 슬리퍼를 신고 일단 찾으러 나갔습니다.
(그 때는 고양이를 빨리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별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웬 여자가 오밤중에 프릴 달린 하트무늬 잠옷을 입고 빙글빙글 돌아다니니 얼마나 이상했을까요;;)
현관문 앞 복도로 뛰쳐나오긴 했지만 고층인지라 아직 아파트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계단을 올라갔는지 내려갔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데려갔는지
여름이라 다들 문 열고 있으니 다른 집으로 들어간 건지
밖으로 이미 나갔다면 어디부터 찾아봐야 할지 사실 엄청 막막하더라고요. 1차 멘붕!
눈 앞이 깜깜했지만 일단 1층까지 계단을 통해 한 층 한 층 내려가며
매 층마다 복도를 확인했습니다. 없었어요...
두 번 정도를 아파트를 오르내리며 봤는데 아파트 내에는 숨을 곳이 없어보였습니다.
그래서 집 앞 지상주차장과 화단 부근도 걸어다니며 찾아보려는데 정말 계속 막막했어요.
사실 고양이가 아무리 집에서 개냥이처럼 잘 따른다해도 밖에서는
이름을 부른다고 올 동물도 아니거니와 워낙 날렵하고 유연해서 숨어있으면 찾을 방법이 없을 것 같았어요.
엄마도 나오셔서 예전 길냥이 생활할 때의 구역을 왔다갔다 하시며 찾으셨고
저는 따로 걸어다니며 나즈막히 모리 이름을 부르며 어디선가 모리가 뿅하고 나오길 바라며 찾아다녔습니다.
보통 차 밑에 숨어있을 확률이 높다는 글을 본 것 같아서 바닥에 손 짚어가며 차 밑을 봤는데
주차된 차가 워낙 많아서 그냥 몇 대 걸러 한 대씩만 볼 수 밖에 없었어요.
조금 시간이 지나자 아빠가 귀가하셔서 같이 합세하셨습니다.
모리가 가장 좋아하는 북어 간식통을 들고 흔들면서 소리를 내시며
아파트 전층을 한 번 도시더니 밖으로 나오셔서는 집을 기준으로 앞 뒤 두동 정도를 빙빙 도셨어요.
근데 제 생각에는 그렇게 소리를 낸다고 한들 쉽게 나와줄 것 같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셋이 뿔뿔이 흩어져 모리를 1시간 정도 더운 밤에 땀을 흘리며 찾았지만
몇 마리씩 보이던 길고양이 한 마리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고양이 소리도요...
부모님께서도 뾰족한 방법이 없어 지치셨는지 내일 아침에 다시 찾아봐야겠다고 하시며 들어가셨는데
전 오늘밤 아니 새벽에 찾지 못하면 왠지 잠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기에
혼자 좀 더 넓은 구역으로 찾아보겠다고 하고 다시 동네를 돌아다녔습니다.
두 동 뒤의 아파트 사잇길까지 나갔다가 우리동 앞 동 쪽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저 멀리 고양이가 한 마리 길을 건너고 있지 뭐에요...?! 한 달음에 달려 그 고양이를 뒤쫓았습니다.
차 사이로 걸어가고 있길래 '모리야?'하고 불렀는데 젖소무늬의 다른 길고양이였어요.
근데 이상한 건 도망을 가지 않고 뒤를 돌아봤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쪼그려 앉아 손을 내밀면서 '혹시 우리 모리 못 봤니?' 혼잣말을 했어요.
그랬더니 더 놀라운 건 제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오는 거에요 @.@
순간 모리를 찾지 못하면 이 녀석이라도 데려갈까하는 이상한 생각을 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그 고양이가 왔던 길을 되짚어 따라가봤어요.
혹시 우리 모리를 만나고 오는 길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고양이 소리가 나길 바랐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어요.
그리고 다시 뒤를 돌아보니 그 고양이가 제 쪽을 보고 있다가 어떤 차 밑으로 쏙 들어가더라고요.
별 생각없이 보고 있었는데 경계할 때 내는 하악질 소리가 나는 겁니다!!
바로 엎드려서 그 차 밑을 봤더니 다른 고양이가 웅크려 앉아있는데
젖소무늬 길고양이가 그 고양이를 쫓으려는 건지 그러고 있더라고요.
폰 조명을 켜서 웅크린 고양이를 비추어보니 모리였습니다.
젖소무늬 고양이를 발소리로 위협해서 일단 보내긴 했는데
모리를 아무리 불러도 웅크린 채로 집에선 들어보지 못한 '우우웅-'거리는 소리만 내며 있는 거에요 ㅠㅠ 2차 멘붕!
바로 엄마께 전화를 걸어서 '모리 찾았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기쁘디 기쁜 소식을 전하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아빠가 가지고 오신 북어간식을 손바닥에 덜어서 차 밑으로 깊숙히 내밀었어요. 모리 코 앞까지-
모리가 관심을 보이며 냄새를 맡으려고 할 때 손을 차 밖으로 조금씩 뺐습니다.
그렇게 모리의 목덜미가 아빠의 손이 닿을 범위에 노출된 순간! 덥썩~!
이렇게 새벽에 온가족의 마음을 뒤집어 놨던 모리의 1시간 반 동안의 가출사건이 종료되었어요.
집으로 돌아온(X, 잡혀온 O) 뒤, 요새 잠자는 곳으로 찜한 부엌 의자 위에 쓰러지듯 누워있는 모리입니다.
자기도 밖에 나갔다 와서 놀랐는지 한동안 동공이 계속 저렇게 커져있었어요.
조금은 진정되어 가는 모리씨.
문단속을 잘 하는 게 첫 번째 일이겠지만 더운 여름동안 또 문이 열릴 가능성이 있으니
혹시라도 또 이런 일이 벌어질 때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인식표를 꼭 달아놔야겠습니다.
걸리적 거리는 버클 목걸이(비싸게 주고 산 ㅠㅠ)는 착용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뜨개실이나 십자수실로 가벼운 패브릭 목걸이를 만들어줄까 생각중이에요.
아- 정말 빠른 시간 안에 찾아서 망정이지
고양이를 잃어버렸다는 걸 어느 기관(?), 어느 사이트에 공고해야 하는지
고양이 찾는 전단지는 어떤 내용을 적어서 아파트 어디에 붙여야 하는지 등등
모리를 찾으려고 아파트 밖을 나가는 순간 이 많은 것들이 머릿속을 뒤죽박죽하게 만들었었어요.
혼자 남아서 모리를 찾으며 걸어다닐 때에는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엄마도 일부러 그런 일이 벌어지게 하신 것도 아니고 누구보다 모리를 사랑해주셨는데
제가 너무 모질게 버럭했던 게 '이게 다 엄마 탓이야!'라고 받아들이셨을 수도 있어서
모리를 찾지 못하는 건 어쩌면 엄마랑 저 사이에 금이 갈 수 있는 사건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아찔했습니다.
그래서 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찾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제가 찾지 못하면 모리는 배를 곯으며 건강을 해치거나
최악의 경우 사고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면서 탐정마냥 열심히 찾았던 것 같아요.
제게 일어날 거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았던 고양이 가출사건을 겪으며
가출한 고양이를 찾는 분들께 해드리고 싶은 말씀을 몇 글자 적어봅니다.
당신의 고양이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당신이 찾아주길 기다리고 있어요.
하나 뿐인 당신의 고양이가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
아래는 (이미 잘 정리된 글이 많은 상황에서) 팁 아닌 팁으로 정리해 둔
제가 가출했던 모리를 찾을 때 유효했던 탐색(?) 방법입니다.
0) 잃어버린, 가출한 것을 인지한 직후 바로 탐색을 시작할 것! (시간이 지날수록 멀리 이동할 수 있어요)
1) 큰 소리가 아닌 평소 목소리로 고양이 이름 부르기 (새로운 상황에서 더 놀라지 않도록)
2) 집에서 가까운 곳부터 차근차근 찾으며 범위를 넓혀나가기 (잘 모르는 장소에서는 이동 반경이 크지 않다고 합니다.)
3) 지하실, 차 밑 등 어둑어둑하고 몸을 숨기고 있을 만한 공간 확인하기 (나 여깄어~하며 노출된 곳에 있을 린 없겠죠)
4) 동네 다른 길고양이 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 (특히 싸우는 소리)